"활동가 여러분, 건강을 챙기는 것도 '활동'입니다"
2일, 공익활동가 건강실태 및 지원방안 모색 토론회 개최
활동가 건강권, '개인' 넘어 '사회'의 과제로..지원과 연대 방안 모색
공익활동가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 개인을 넘어, 단체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식이 공유됐다.
'공익활동가 건강실태 및 지원방안 모색 토론회'가 2일 서울 망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렸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사장 박래군, 이하 동행)이 주관하고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후원한 이번 토론회는 공익활동가들의 건강권 문제와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는 동행과 협력기관(녹색병원, 뜻밖의상담소)이 진행해 온 지원 사업의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구체적으로 ▲긴급 의료비 지원 사업 데이터 분석 ▲정밀 종합검진 지원 사업 결과 분석 ▲마음 건강 지원 사업 5개년 성과와 과제 등 세 가지 발표를 통해 활동가들이 처한 건강 문제의 현실을 깊이 있게 살폈다.
진단 :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활동가들
홍다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매니저는 "모두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인권을 지키려는 사람의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활동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활동에 몰입하느라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며 국제앰네스티가 청년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사례를 소개했다. 참여자들은 '내가 멈추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불안해했고,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 힘들었던 경험을 토로했다. 한 활동가는 "먹고 자고 씻는 건강한 일상이 무너졌다"고 괴로워했으며, 다른 활동가는 현실의 벽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했다. 홍 매니저는 이처럼 활동 중에 얻은 상처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누적돼 번아웃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제 때 치료하지 못해 병을 키운 사례들도 보고됐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예방의학 전문의)은 동행의 '긴급의료비 지원사업' 신청 사례를 분석한 결과, "예방 가능한 건강 악화 사례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치과 질환이 대표적이었다. 김 위원은 "간단한 충치 치료 시기를 놓쳐 임플란트 시술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디스크나 관절염 같은 근골격계 질환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 관리했다면 호전됐을 문제들이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화되는 경우가 잦았다. 예방 가능한 건강 문제가 제때 관리되지 않아 병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마음 건강 문제도 심각했다. 오현정 뜻밖의상담소 공동대표는 '공익활동가 마음 건강 지원 사업' 5년간의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활동가들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지원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리 지원을 신청한 활동가 중 56%가 상담 전 검사에서 '중간 수준의 우울' 상태였고, '상당한 우울' 이상인 경우도 13명에 달했다. 스트레스 척도 검사에서는 응답자의 85%가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한 '극심한 스트레스' 집단으로 분류됐다.
이 밖에도 활동가들이 산업재해를 적극적으로 신청하지 못하고, 상업적 비급여 의료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등, 개인 차원의 의료 접근성 문제가 지적됐다.
제언: 자기 돌봄(활동가)에서 서로 돌봄(동료활동가), 함께 돌봄(지역·사회)으로
오 대표는 사후 치료를 넘어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며, 활동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사소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개인의 노력을 넘어 단체와 조직이 함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벽한 활동가는 없다'는 미국 캠페인을 소개하며 "우리 모두 취약하기에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조직과 공동체의 체질을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조직의 책임을 더욱 강조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려면, 일하는 공간의 건강한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발표했다. 건강 악화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환경에 있는 경우가 존재하는 만큼, 검진부터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조직 차원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영철 서울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 역시 "활동가의 건강은 공동의 문제이며, 공동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활동가의 건강 문제가 개인의 불운이 아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싹틀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여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는 ‘관계’라는 핵심 자산을 바탕으로 돌봄의 영역을 지역사회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가진 풍부한 관계 자산을 건강관리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신뢰하는 의사와 단체 차원에서 관계를 맺는 ‘주치의 만들기’ ▲동료들과 함께하는 ‘건강 습관 형성’ ▲지역 주민과의 ‘관계망 형성’ 등을 제안했다. 그는 지역 주민과의 관계망 형성에 대해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이웃과 친구를 만드는 것이 ‘나다움’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며, 개인과 조직을 넘어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의 관계망을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연대: 개인과 조직을 넘어 '노동보건'이라는 사회적·제도적 접근으로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은 활동가들의 건강 문제를 '노동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겪는 장시간 근로, 직무 스트레스 등의 문제는 다른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다"며, 이는 개별 단체를 넘어선 사회 전체의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활동가들의 건강문제 담론을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건강 관리'라는 더 넓은 틀에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영철 부센터장은 여러 단체가 협력해 '위험성 평가'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활동가들이 마주하는 유해·위험 요인(사무 노동, 물품 운반, 집회 현장의 폭염·한파 노출 등)을 스스로 목록화하고 공유하자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위험 요인 목록이 있어야 막연했던 문제가 눈에 보이는 '공동의 과제'가 된다"며, "이 과정을 통해 건강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의 해결책을 찾는 출발점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내놨다.
박래군 동행 이사장은 활동가들의 상황이 "사회 보장에서 소외된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경력 10년 미만이거나 무급 활동가는 자신의 건강을 챙길 겨를이 없다"며 개인과 조직을 넘어선 공동체 차원의 해결책 모색에 동의했다.
토론회를 후원한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의 김인권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 역시 우리가 돌봐야 할 소중한 이웃"이라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을 돌보는 것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기억하며 만든 우리 재단의 중요한 소명"이라고 강조했다.